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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바텐더(Bartender)

까치 2008.11.06 23:59 조회 수 : 4558


나이를 먹으니 만화나 애니, 게임을 즐기는 취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판타지나 SF같이 현실에선 맛볼 수 없는 장르의 만화나 애니를 즐겨 보았고 플레이 시간이 길고 시스템이 복잡한 RPG나 어드벤쳐 게임을 주로 플레이했습니다. 근데 가정을 꾸미고 회사에서 직급이 점점 올라가 취미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자 게임은 짬짬히 할 수 있는 액션이나 스포츠, 퍼즐을 찾게 되고 만화나 애니도 현실 생활에 근접한 기업물이나 전문 직종 이야기를 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뀐 취향 탓에 얼마전부터 재미있게 보고 있는 만화책이 지금부터 소개할 바텐더(Bartender)입니다.

'신의 글라스'라는 별명을 가진 천재 바텐더 사사쿠라 류는 8년간의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날, 곤경에 빠진 호텔맨 쿠루시마 미와를 만납니다. 히로인격인 미와의 문제를 자신의 장기인 칵테일 솜씨로 해결하면서 일본 생활을 시작한 류는 일류 호텔의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고 평범한 바에서 자신의 경력을 쌓기 시작합니다. 그런 류 앞에 나름대로의 고민거리를 가진 다양한 직종의 손님들이 찾아오고 류는 자신의 장기인 칵테일 솜씨로 그들의 상처를 감싸안으면서 오늘도 바 한 구석에서 '신의 글라스'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바텐더란 바에서 손님과 마주보면서 칵테일이나 양주를 서비스하는 일종의 주류 셀렉터입니다. 손님이 원하는 술을 내주기도 하고 손님 기분에 맞춰 자신만의 칵테일을 서비스하기도 하죠. 만화를 보면 손님의 인생 상담(?)을 겸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골이 아닌 이상 가벼운 농담만 주고받는 것이 보통이고 자기 속마음을 꺼내놓기는 힘든 상대입니다. 일본의 바를 가본적은 없습니다만 캐나다나 미국 바에서 만난 바텐더들은 술 골라주고 농담 받아주는 사람이지 카운셀러는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국내 바의 바덴터들은 여자가 많아 술자리 흥을 더해주는 엔터테이너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네요. 하지만 만화에서 그려지는 바텐더는 상처받은 손님의 영혼을 치유하는 고귀한 직업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바텐더들은 그런지 모르겠지만 바텐더라는 직업을 굉장히 미화한 느낌을 받아 자연스럽진 못했습니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할까요?

만화는 재미있습니다. 고정된 등장 인물이 많지 않아 항상 신선한 느낌이 들고 구성 자체가 옴니버스식이라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매화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고민거리를 해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칵테일은 더욱 다양하게 소개되기 때문에 술에 대한 부가 지식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전문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다는게 이래서 좋군요. 고정된 등장 인물은 적지만 스토리 진행 상 꼭 필요한 부분에 배치되어 있어 이야기 전개에 안정감을 더합니다. 주인공 류를 중심으로 히로인 미와, 알게 모르게 류를 후원하는 다이조 회장, 류의 바텐터 경험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일류 바텐더 쿠즈하라와 히가시야마... 전체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각 화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달라 매화 이번엔 어떤 캐릭터들이 고해성사를 할까라는 묘한 기대감까지 갖게 하더군요. 아래의 일부 단점을 제외하고는 꽤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미화된 직업관과 과도한 무게 잡음을 들 수 있겠네요. 미화된 직업관이야 바텐더를 소재로 한 만화니 넘어간다쳐도 매화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감정이 많이 단순화되어 있어 전개상 어색한 부분이 제법 보입니다. 상업성에 찌든 시나리오 작가가 칵테일 한잔에 동아리 시절 패기를 되찾는 장면이나 타락한 정치가의 복잡한 마음을 단 몇 분만에 달래주는 위스키 한 잔... 머리속으론 이렇게 전개되는 것이 맞겠지라고 맞장구를 치지만 정서적으로 사람 감정이 이렇게 단순하게 풀리겠어라는 묘한 반감(?)이 생기더군요. 등장 인물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깔끔한 작화는 초반에 돋보이긴 하지만 매화 지나가는 캐릭터들의 표정이 너무 비슷해 기억에 남는 캐릭터들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몇 가지 단점을 지적하긴 했지만 안정적인 전개가 돋보이는 수작이었습니다. 와인을 소재로 한 '신의 물방울'과 비교해 전문 지식이 너무 난무하지 않으면서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잘 꾸려나가는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더 좋았습니다.